대사농
대사농(大司農)은 고대 중국의 관직이다. 국가의 재정을 담당하였다.
진
치율내사라 하였으며, 이 명칭은 전한 초기까지 이어졌다. 내사 업무 중 재정·경제 장관의 성격을 대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전한
한 고조 때에 치속내사(治粟內史)라 하였다 경제 때 대농령(大農令)으로 고쳤고, 무제 때인 태초 원년(기원전 104)에 대사농으로 고쳤다. 왕망 집권 후 희화로 고쳤다.[1]
속관은 다음과 같다.
명칭 | 담당 업무 |
---|---|
균수(均輸) | 물자 공급 |
태창(太倉) | 곡식 |
평준(平準) | 물가 |
도내(都內) | 국고 |
적전(籍田) | 황제 직할지의 재정 |
늠희(廩犧) | 제사의 희생물 |
신
납언(納言)으로 고쳤다.
후한
다시 대사농으로 고쳤다. 전한의 늠희는 하남윤 소속으로 돌렸고, 균수는 없앴다.
말기에는 상서(尙書)가 재정을 주관하였으며, 또한 각종 물자를 관리하는 직책이 설치됨에 따라 권한이 축소되었다.
속관은 다음과 같다.
명칭 | 담당 업무 |
---|---|
태창령(太倉令) | 곡식 |
평준령(平準令) | 물가 · 직물 |
도관령(導官令) | 황제가 먹는 쌀 · 건량(乾糧) |
삼국 시대
조위
위국 시절에 설치한 대농(大農)을 그대로 쓰다가, 조위 건국 직후 대사농으로 고쳤다.
촉한·동오
대사농을 설치하였다.
북제
사농시(司農寺)를 설치하고 그 장관을 사농시경 혹은 사농경(司農卿)이라 하였다. 부관은 사농소경(司農少卿)이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