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에이탄
라파엘 에이탄 רפאל איתן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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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자 표기 | Rafael Eitan |
출생 | 1929년 1월 11일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텔아다심 |
사망 | 2004년 11월 23일 이스라엘 아슈도드 | (75세)
성별 | 남성 |
국적 | 이스라엘 |
직업 | 군인 |
종교 | 유대교 |
라파엘 에이탄(히브리어: רפאל איתן, 영어: Rafael Eitan, 199년 1월 11일 ~ 2004년 11월 23일)은 이스라엘의 장군이자 전 이스라엘 방위군 참모총장, 이후 정치인, 크네세트 의원, 정부 장관을 역임했다.
어린 시절
라파엘 에이탄은 1929년 나사렛 인근 텔아다심의 모샤브에서[1]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으로 이주한 우크라이나 유대인 엘리야후와 미리암 에이탄 사이에서 라파엘 카민스키(러시아어: Рафаэль Каминск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유대인 방위 단체 하소메르의 설립자 중 한 명이었다.
군사 경력
참모총장
1978년 4월 1일, 에이탄은 중장으로 승진하여 에제르 바이츠만에 의해 이스라엘 방위군 참모총장으로 임명되었다.
에이탄은 IDF의 규율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상징적인 조치로 임기를 시작했다. 그는 군인들에게 군 베레모를 착용하고 소총 사격 연습 후 사용 후 카트리지를 수거하도록 요구했다.
에이탄은 이집트가 이집트에 반환된 후 시나이반도 외부에 IDF를 재배치하는 작업을 감독했다. 1982년 4월 이집트가 인프라 비용 지불을 거부하자 아리엘 샤론과 함께 시나이에 있는 이스라엘 마을 야미트를 철거했다.
정치 경력
1983년 4월, 군에서 은퇴한 후[2], 에이탄은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자신의 뿌리와 땅으로 연결된 사브라 이스라엘인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농업과 목공, 비행과 같은 취미에 대한 그의 배경은 이스라엘 대중의 많은 관심을 끌었던 이 이미지에 기여했다.[3]
사망
2004년 11월 23일, 에이탄은 항구 확장 프로젝트를 감독하던 지중해 항구 아슈도드에 도착했다. 큰 파도가 방파제에서 바다로 휩쓸려 들어가 익사했다. 그는 이스라엘 해군에 의해 시신이 수습되기 전까지 거친 바다에서 한 시간 넘게 길을 잃었다. 그는 그를 되살리려는 노력이 실패한 후 사망 판정을 받았다.[4]
각주
- ↑ Lawrence Joffe, ’ Lieut-Gen Rafael Eitan,’ The Guardian 25 November 2004 'Eitan revealed that his mother was a member of the Christian Subotnik sect, and a descendant of the Russian tsar's bodyguards. Thus the Jewish ultranationalist, according to Rabbinic law, might not have been Jewish.'
- ↑ Israel's military chief retires and is replaced by his Deputy -- New York Times 20 April 1983
- ↑ “Loading...”. 《www.myetymology.com》. 2016년 3월 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4월 23일에 확인함.
- ↑ Former Israeli army chief drowns BBC News, 23 November 2004
외부 링크
- 라파엘 에이탄 - Knesset website
- Rafael Eitan's biography Knesset website (영어)
- Rafael "Raful" Eitan Jewish Virtual Libr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