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아말리아 폰 외스터라이히 (1701년)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아말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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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로마황후 | |
재위 | 1742년~1745년 1월 20일 |
전임 |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 |
후임 |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
바이에른 선제후비 | |
재위 | 1726년~1745년 1월 20일 |
전임 | 테레사 쿠네군다 소비에스카 |
후임 | 작센의 마리아 안나 |
이름 | |
휘 | Maria Amalie Josefa Anna |
신상정보 | |
출생일 | 1701년 10월 22일 |
출생지 | 오스트리아 대공국 빈 |
사망일 | 1756년 12월 11일 | (55세)
사망지 | 바이에른 선제후국 뮌헨 |
가문 | 혼전:합스부르크 왕가 혼후:비텔스바흐 왕가 |
부친 | 신성로마제국의 요제프 1세 |
모친 |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아말리아 빌헬미네 |
배우자 |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7세 |
종교 | 로마 가톨릭 |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아말리아(독일어: Maria Amalia von Österreich, 1701년 10월 22일~1756년 12월 11일)는 신성로마제국의 요제프 1세와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아말리아 빌헬미네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7세와 결혼하였다.
생애
그녀는 신성로마황제이자 오스트리아 대공인 요제프 1세의 딸로 태어났으나, 합스부르크 가문이 가진 대부분의 영지는 살리카 법을 따르므로, 그녀는 계승권이 없었다. 그리하여, 요제프 1세 사후 삼촌이던 카를 6세가 즉위하지만 그 역시 딸만 둘을 낳게 되고, 결국 국사조칙을 발표하여, 마리아 테레지아가 추정상속인이 되자 이에 반발하였다.
자녀
그녀는 카를 7세의 사이에서 7명의 자식을 얻었다.
- 막시밀리안(1723년)
- 마리아 안토니아(1724년 7월 18일 - 1780년 4월 23일)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크리스티안과 결혼
- 테레제 베네딕타(1725년 12월 6일 - 1743년 3월 29일)
- 막시밀리안 3세(1727년 3월 28일 - 1777년 12월 30일)
- 루트비히 레오(1728년 8월 25일 - 1733년 12월 2일)
- 마리아 안나(1734년 8월 7일 - 1776년 5월 7일) 바덴 후작 루트비히 게오르그와 결혼
- 마리아 요제파(1739년 4월 30일 - 1767년 5월 28일) 신성 로마 제국의 요제프 2세의 황후
전임 테레사 쿠네군다 소비에스카 |
바이에른 선제후비 1726년~1745년 1월 20일 |
후임 작센의 마리아 안나 |
전임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 |
보헤미아 왕비 1741년~1743년 |
후임 스페인의 마리아 루도비카 |
전임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 |
신성로마황후 독일 왕비 1742년~1745년 1월 20일 |
후임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