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의 수호자

알락산다르 3세가 사망한 이후 사용된 스코틀랜드 정부 인장.

스코틀랜드의 수호자(Guardian of Scotland)는 스코틀랜드의 중세사에서 제1, 2차 공위기(각각 1290년-1292년, 1296년-1306년) 동안 사실상 스코틀랜드의 국가원수 권한대행이었던 귀족들에게 주어진 칭호이다. 공위기 이후로도 많은 수호자들이 존재했고, 이들의 존재는 스코틀랜드의 정치사적 발전에 튼 걸림돌이 되었다.

제1차 공위기 스코틀랜드의 수호자

  • 세인트앤드루스 주교 윌리엄 프레이저
  • 글래스고 주교 로버트 위샤르트
  • 바데노크 영주 존 2세 코민
  • 제5대 스코틀랜드 궁내대신 제임스 스튜어트
  • 제2대 부칸 백작 알락산다르 코민
  • 피페 백작 돈카드 3세

이상 명단은 1290년 솔즈베리 조약을 조인한 스코틀랜드 의회 자리에서 작성된 서한(고프랑스어로 쓰임)에서 확인할 수 있다.[1]

제2차 공위기 스코틀랜드의 수호자

  • 앤드루 모레이 (1297년)
  • 윌리엄 월리스 (1297–1298)
  • 캐릭 백작 로버트 브루스 (1298년–1300년)
  • 바데노크 영주 존 3세 코민 (1298년–1300년, 1302년–1304년)[2]
  • 세인트앤드루스 주교 윌리엄 램버튼 (1299년–1301년)
  • 잉그램 드 움프라빌 (1300년–1301년)
  • 존 드 소울레스 (1301년–1304년)
  • 제4대 리치먼드 백작 브르타뉴의 장 (1305년–1307년; 1307년–? ) - 에드워드 1세의 조카로서 처음 임명하고 에드워드 2세가 재신임함

공위기 이후 스코틀랜드의 수호자

로버트 1세 사후 데이비드 2세 치세때까지의 수호자들.

  • 제1대 모레이 백작 토머스 랜돌프 (1329년–1332년). 1318년 정착법에 의해 임명
  • 마르 백작 돔날 2세 (1332년, 열흘 재임함)
  • 앤드루 모레이 (1332년–1333년) 재임 중 잉글랜드군에 포로로 잡힘.
  • 아치볼드 더글러스 (1333년, 3개월 재임함)
  • 앤드루 모레이 (1335년-1338년)
  • 로버트 스튜어트: 데이비드 2세의 조카(나이는 더 많음)이자 차기 스코틀랜드 국왕. 네빌스크로스 전투(1345–1357)에서 데이비드 2세가 잉글랜드군에 포로로 잡히자 11년간 왕권을 대행했다(1345년–1357년).

같이 보기

각주

  1. “Margaret: Manuscript - 1290, 14 March, Birgham - Parliamentary Records - Letters: confirmation of the treaty of Salisbury” (고대 프랑스어영어). Records of the Parliaments of Scotland to 1707, University of St Andrews. 2009년 10월 3일에 확인함. 
  2. G. W. S. Barrow, Robert Bruce and the Community of the Realm of Scotland (2005) p. 189.

참고 자료

  • Mack, James Logan (1926). The Border Line. Pub. Oliver & Boyd. pp. 317–322.
  • McNaught, Duncan (1912). Kilmaurs Parish and Burgh. Pub. A.Gardner. p.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