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러시 데이(Dorothy Day, 1897년-1980년)는 미국의 가톨릭 평화주의자, 작가, 언론인, 생태운동가, 사회운동가, 사회주의자이다. 저서로는 자서전인 《The Long Loneliness》(오랜 외로움, 복있는 사람에서 《고백》이라는 제목으로 역간)등이 있다.
경력
1897년 11월 8일:뉴욕브루클린에서 개신교 신자인 존 데이와 그레이스 데이사이에서 태어남.
자서전 《고백》(복있는 사람)에 따르면, 도러시 데이는 어린이일 때에 성공회성당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1917년-1918년: 일리노이 대학교 공부를 한 학기를 남겨두고 공부를 작파. 글과 독서를 좋아해서 언론인이 되고 싶었다. 여성이 노동하는 것을 싫어하는 아버지 존 데이가 언론인들에게 전화를 해서 고용하지 못하게 했다. 다행히 미국 뉴욕의 사회주의신문 <콜>과 월간지 <민중>의 기자로 활동하였다. 트로츠키를 만나 인터뷰하고 아동노동과 가난한 자들의 현실을 보도. 여성 참정권 운동으로 감옥에 갇힘. 감옥에서 성서를 읽음. 기자시절 급진주의자들, 지식인들, 작가들, 극작가 유진 오닐과 교유.
1927년 12월 28일 : 스태튼 아일랜드의 한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녀의 그리스도께로의 회심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무신론자인 포스터와 헤어졌다.
1929년:할리우드 영화제작사의 시나리오 작가로 3개월간 캘리포니아에 체류하다. 이후 멕시코에 6개월간 체류하다. 그해 대공황이 시작되다.
1930년: 여름에 뉴욕으로 복귀하다. 잡지 <커먼윌>과 <아메리카>에 기고하다.
1932년 12월 | 대공황의 절정기에 일어난 “굶주림의 행진”을 취재하기 위해 워싱턴에 간 도러시는 시위 참여자들을 경찰이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국가폭력과 민중들을 굶주림에 내모는 자본주의에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꼈다.이 사건을 계기로 도러시는 노동자들과 민중들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뉴욕에 돌아온 도러시는 멘토 피터 모린과“가톨릭 노동자 운동”(가톨릭 워커)을 시작하다.
1933년 5월 1일 : 평화주의 노선의 가톨릭 노동자 신문 발행.
1935년 : 가톨릭 노동자 신문에서 기독교 평화주의를 주장함. 또한 환대의 집을 열어 사회적 소외자들을 돌보기 시작함. 1936년까지 미국 전역에 33개의 환대의 집이 세워졌음.
1935년 :환경운동의 실천을 위한 농촌 공동체인 공동 농장을 시작하지만, 입주자들의 자기중심성 탓에 내분을 겪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1936년 :스페인 내전 발발 후 자신을 가톨릭 신앙의 옹호자라고 밝힌 프랑코 총독과 파시스트 정당 쪽으로 미국 가톨릭교회의 여론이 기울자, <가톨릭 노동자> 신문은 공개적으로 미국 가톨릭 교회의 우경화에 반대하는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었다. 보수적인 독자들의 거센 반발과 구독 취소가 잇따르는 어려움을 겪었다.
1938년: 자신의 신앙 여정을 그린 <유니언 광장에서 로마까지>를 출간하다.
1939년 :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가톨릭 노동자> 신문은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주의 입장을 고수하였다. 안팎으로 많은 공격을 받았다. 가톨릭 노동자 운동의 초창기 상황을 기록한 <환대의 집>을 출간하다.